2006년 08월 28일
사라의 웃음 하갈의 눈물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휴전한지도 보름 정도 지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평화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전쟁 전과 전쟁 후.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감정의 골은 오히려 깊어졌겠지요.
우리는 대개 이번 전쟁의 원인을 지난 6월25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하고 뒤이어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역시 이스라엘 병사 둘을 납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납치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 6월20일에는 하마스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한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으로 인해 세 명의 사망자와 1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6월13일에도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의 민간인 아홉 명이 죽었습니다. 6월9일에는 베이트 라히야 비치에 가해진 폭격은 민간인 여덟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32명의 부상자를 만들었습니다.(deulpul님의 "이스라엘의 공격을 불러온 병사 납치?" 참조) 물론 이스라엘의 폭격에도 이유는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증오의 끝이 보일까요?
성경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사래는 아브람에게 자신의 여종을 통하여 아이를 낳도록 하자고 합니다. 이를테면 씨받이인 거지요; 아무튼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종 하갈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스마엘, "하나님께서 들으심"이었지요.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아브라함과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삭, "웃음"이었습니다. 이삭을 낳고 사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세기 21:6)
하지만 사라의 이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되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열린 잔치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본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말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고야 맙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합니다. 아브라함이 86세에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예요. 이삭과의 나이차는 14살입니다. 젖을 떼는 날이라고 하니까 이삭이 한 두세살쯤 되었겠지요? 16살짜리 이스마엘이 2살짜리 이삭을 놀리면 뭘 얼마나 놀렸겠습니까; 그냥 동생이 귀엽고 하니까 장난 조금 쳤겠지요. 하지만 사라는 그걸 넘기지 못하고 아브라함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세기 21:10) 어쩌면 이제 갓 젖을 뗀 아들 이삭에게 좀 더 많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스마엘을 내쫓은걸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무튼, 사라의 웃음은 하갈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이스마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비록 사라가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은 정말 좋은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백 평짜리 집에서 살면서 웃을 때 그 집 옆에서 노숙자들이 울고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삶이 아닙니다. 내가 스테이크를 먹고 있을 때 식당 뒤편에서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삶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웃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웃들과 그 기쁨을 나눠야만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혼자만 누리고 있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하갈을 울리면서 혼자 웃고 있는 사라와 같은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혼자 웃는 것이 아니라, 나의 웃음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대개 이번 전쟁의 원인을 지난 6월25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하고 뒤이어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역시 이스라엘 병사 둘을 납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납치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 6월20일에는 하마스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한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으로 인해 세 명의 사망자와 1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6월13일에도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의 민간인 아홉 명이 죽었습니다. 6월9일에는 베이트 라히야 비치에 가해진 폭격은 민간인 여덟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32명의 부상자를 만들었습니다.(deulpul님의 "이스라엘의 공격을 불러온 병사 납치?" 참조) 물론 이스라엘의 폭격에도 이유는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증오의 끝이 보일까요?
성경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사래는 아브람에게 자신의 여종을 통하여 아이를 낳도록 하자고 합니다. 이를테면 씨받이인 거지요; 아무튼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종 하갈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스마엘, "하나님께서 들으심"이었지요.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아브라함과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삭, "웃음"이었습니다. 이삭을 낳고 사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세기 21:6)
하지만 사라의 이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되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열린 잔치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본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말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고야 맙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합니다. 아브라함이 86세에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예요. 이삭과의 나이차는 14살입니다. 젖을 떼는 날이라고 하니까 이삭이 한 두세살쯤 되었겠지요? 16살짜리 이스마엘이 2살짜리 이삭을 놀리면 뭘 얼마나 놀렸겠습니까; 그냥 동생이 귀엽고 하니까 장난 조금 쳤겠지요. 하지만 사라는 그걸 넘기지 못하고 아브라함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세기 21:10) 어쩌면 이제 갓 젖을 뗀 아들 이삭에게 좀 더 많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스마엘을 내쫓은걸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무튼, 사라의 웃음은 하갈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이스마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비록 사라가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은 정말 좋은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백 평짜리 집에서 살면서 웃을 때 그 집 옆에서 노숙자들이 울고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삶이 아닙니다. 내가 스테이크를 먹고 있을 때 식당 뒤편에서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삶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웃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웃들과 그 기쁨을 나눠야만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혼자만 누리고 있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하갈을 울리면서 혼자 웃고 있는 사라와 같은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혼자 웃는 것이 아니라, 나의 웃음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by | 2006/08/28 11:48 | 교회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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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그렇게 많이 읽었다는 분들이 이런 것도 생각을 못해서 엉뚱하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참 황망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이 왜 믿음의 가장 하찮은 것들만 신경을 쓸까요.
措大// 아하핫; 뭔가 경건 -_-; 좀 좋은 걸로 뉴스에서 봤으면 좋겠어요. 꼭 어디 이상한 구국기도회 이딴데서나 보이니;
divoire// 그럼요. 우리 같이 웃어요. :D
_푸훗_// 와아- 가을이 오는 기념 좋은데요? 가을에는 어떤 선물이 좋을까나... 받고 싶은 선물 있어요?
kritiker// 아멘~ ^^;
시리우스// 아아. (미역님처럼) 같은 부분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 전혀 그렇지 않;;;
아르메니아// 오옷! 진지한 불교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D
Noir_Apple// 으흣- 감사합니다. ^^
戮屍// 하긴 요즘 전쟁은 죄다 경제전쟁이지요. 종교는 핑계일뿐. (사실 예전 전쟁들도 죄다 경제전쟁이었다고 하더군요;)
파김치//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서 피눈물 나는 법인데 말입니다. 쳇;
무튼, 기독교인들이, 아니 전 지구인들이 마른 미역님과 같은 생각을 반만 가졌다면 참 좋을텐데 말입니다. 설마하니 그러면 세상이 너무 밋밋할까봐 저 난리들을 피우는 것은 아니겠지요?
연어// 에이에이. 연어님은 토끼같은 자식 세명!
moojin// 아니, 그렇다고 제가 뭐 딱히 진짜 크리스천이라고 했다가는 돌맞을 것 같은걸요; 노력해야지요;;;
kunoctus// 네- 같이 노력해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