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씨의 황금시대

황금마차 캬바레에 오신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_공연시작 30분 전쯤 대학로 '예술마당'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티켓을 받아들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리가 A열 1, 2번이었거든요. 보통 극장에서 A열 1, 2번이라고 하면 맨 앞줄 왼쪽 구석자리. 그다지 좋은 자리라고는 할 수 없는 자리잖아요. 예전에 딱 한 번 A열 1, 2번 자리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곤란했어요. 단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목이 아프더라구요. 물론 대형 극장이 아니라 소극장이다보니 그런 참사야 벌어지지 않겠지만서도 이왕이면 가운데에서 보는게 좋잖아요. 그래서 표를 받아듣고서는 살짝 걱정했었답니다. 아무래도 관객 중에서 제일 일찍 온 것 같은데, 자리를 좀 바꿔달라고 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공연장 좌석 배치표를 살펴봤지요.
_그런데... 어머나! 걱정했던것과는 달리 A열 1, 2번 자리는 맨 앞줄 정 가운데였던거예요. 소극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자리! 이 좋은 자리는 이후로도 몇 번의 행운을 안겨다줍니다. 그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_"몸을 때리더니 나중에는 마음을 때리는" 폭력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캬바레 '황금마차'의 간판가수 박민자.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가족에게로, 좀 더 정확히는 딸에게로 돌아오고자 합니다. 하지만 엄마 없는 10년의 세월동안 아버지 병수발에 시달려가며 삶에 지친 딸 미아는 그녀를 거부합니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이유로 연극배우가 되고자하는 미아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가족 생각은 하지 않고, 딸 생각은 하지 않고 제멋대로 집을 떠나더니, 떠날 때 그랬던 것 처럼 제멋대로 비비고 들어오는 아줌마. 게다가 이제 좀 정신차리고 돌아온건가 했더니만, 철이라는게 들 생각은 있기나 한건지 그 나이가 되어서까지 첫사랑이랍시고 남자나 만나고다니는 데에야 곱게 봐주려고 해도 어디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큰 일을 치룰 때 화장실 문 열어놓는 것 까지요.
_둘의 관계는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요?

_"민자씨의 황금시대"는 두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집 그리고 캬바레. 이 두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민자씨의 삶과 만나게 됩니다. 집은 10년 전까지의 민자씨와 지금의 민자씨를 담고있으며, 캬바레는 민자씨가 집을 떠나있던 10년동안을 담고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연극의 모든 여성은 민자씨이고, 이 연극의 모든 남성은 민자씨가 만난 남자들인지도 모릅니다.
_딸 미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민자씨의 10년 전을 봅니다. 아마 그녀도 미아처럼 눈이 맑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었어요. 결국 민자씨는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집을 떠난 10년동안의 민자씨의 삶을 오사라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사라가 그랬던 것 처럼 민자씨도 많이 사랑하고 많이 배신당했을 겁니다. 그렇게 많은 꿈을 꾼 건 아니었는데요. 사라가 그랬듯이 작은 세탁소 하나 차리는 것 같은 소박한 꿈이었을 뿐인데 남자들은 그녀를, 그녀들을 배신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다시 딸을 찾은 민자씨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민자씨는 결코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고, 아줌마가 되어서, 엄마가 되어서 미아의 앞에 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이자 또한 여성으로서 그렇게 민자씨는 딸의 앞에 섰습니다. 여성성과 모성의 공존. 이 부분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기분좋게 느껴졌어요.

_"민자씨의 황금시대"의 중심에 있는건 여성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남성들은 모두 타자화되어있어요.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런 점에서 이 연극을 여성주의 연극이라고 칭하는 데는 그다지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남성 관객인 저에게 있어서는 분명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이 연극을 바라보는 여성 관객들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애인과 또는 친구와 보는 것도 좋지만, 이 연극 만큼은 엄마와 보는건 어떨까요?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_아참, A열 1번 자리가 가져다준 행운에 대해서 말을 안했네요. 공연 중간에 몇 번정도 관객과 함께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나레이터 모델로 일하던 미아가 간단한 산수문제를 시킨다거나, 사탕을 나눠준다거나 하는 것 말이예요. 특히 민자씨가 드시던 하나밖에 없는 침묻은 사탕을 받았던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히히-

인증샷-

렛츠리뷰

by 마른미역 | 2008/05/17 23:06 | 연극 | 트랙백 | 핑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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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애인 at 2008/05/17 23:33
말씀하신 것처럼 엄마랑 보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그치만 애인이랑 봐도 좋을듯.
철수의 애정행각이 참으로 귀엽지 않던가요..? ㅋㅋ

어머, 그런데
혼자 그렇게 사탕 먹으면 맛있어요?!
Commented by nippang at 2008/05/18 01:02
공주내려와 살면서 극장도 있고 뮤지컬도 종종 공연하니 다른건 아쉽지않은데, 연극보기 어렵다는거! ㅠ.ㅠ 연극보고싶어요.
Commented by 인간양갱 at 2008/05/18 10:35
아 포스팅만 봐도 갑작시리 엄마가 생각나는구먼유.<<야
Commented by 마른미역 at 2008/05/18 17:17
애인// 아하핫- 사탕 별로 맛은 없었어요. 박하맛.

nippang// 아무래도 그렇지요? 다음 서울 나들이때는 연극 보고 가세요! ^^

인간양갱// 연극도 그랬어요 ^^
Commented by 아메유리에 at 2008/05/21 22:41
어머, 어쨌든 혼자 먹었잖아요. 여자친구 냅두고 혼자 사탕 먹는 남자친구는 나빠요.
Commented by 마른미역 at 2008/05/23 22:44
아하핫; 다음엔 같이먹어요?(...)
Commented by 이온 at 2008/05/27 23:56
저도 얼마 전에 봤는데, 양희경 씨의 편안한 연기도 기억에 남지만
딸 미아와 사라를 연기하신 두 배우 분의 열연이 인상적이었어요.
참, 그리고 저도 마른미역 님과 같은 자리에서 관람했답니다. (소곤)
민자 씨의 사탕은 제가 아닌 일행이 받았지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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